샘 레이미 감독 하면 보통 스파이더맨 트릴로지가 먼저 떠오르잖아요. 토비 맥과이어가 거미줄 쏘던 그 영화. 근데 샘 레이미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처음 만든 건 그보다 12년 전이에요. 1990년에 나온 다크맨(Darkman)이라는 영화인데, 주연이 리암 니슨이에요.
이 영화가 좀 독특한 게, 원작 만화가 없어요. 샘 레이미가 원래 배트맨이나 더 섀도우 같은 기존 히어로 판권을 사고 싶었는데 다 안 됐거든요. 그래서 그냥 자기가 직접 히어로를 만들어버린 거예요.
인공 피부와 99분의 제한
줄거리를 간단히 말하면 이래요. 리암 니슨이 연기하는 페이튼 웨스트레이크는 인공 피부를 연구하는 과학자예요. 그런데 여자친구가 변호사인데, 이 여자친구가 부패한 건설업자의 뇌물 서류를 우연히 입수해서 페이튼의 연구실에 두고 가거든요. 그걸 회수하러 온 갱들이 연구실을 폭파하고, 페이튼은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어요.
병원에서 통증 제거 수술을 받은 뒤 페이튼은 고통을 못 느끼게 되는 대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상태가 돼요. 여기서 재밌는 설정이 나오는데, 자기가 연구하던 인공 피부로 다른 사람 얼굴을 만들어서 변장할 수 있거든요. 다만 그 인공 피부가 빛에 노출되면 99분 만에 녹아버려요.
99분이라는 시간 제한이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장치인데, 찾아보니까 영화 첫 편집본의 러닝타임도 99분이었대요.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재밌는 우연이에요.
멋진 히어로가 아니라 괴물에 가까운 히어로
이 영화가 당시 다른 히어로물이랑 달랐던 건, 주인공이 전혀 멋지지 않다는 거예요. 얼굴이 다 타버렸고, 정신도 불안정하고,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없어요. 그냥 자기한테 이런 짓을 한 놈들한테 복수하겠다는 거거든요.
샘 레이미 감독이 오페라의 유령이랑 엘리펀트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는데, 보면 그 느낌이 확 와요. 히어로 영화인데 호러 영화 같은 분위기가 있고, 슬프기도 하고, 근데 또 중간중간 샘 레이미 특유의 과장된 유머가 튀어나와요. 이블 데드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톤이 낯설지 않을 거예요.
리암 니슨이 이 역할을 준비하면서 화상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피닉스 소사이어티라는 단체에 연락해서 리서치를 했대요. 괴물 분장 밑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었으니까요.
흥행은 됐는데 좀 묻힌 영화
제작비 1,600만 달러에 전 세계 수익이 약 4,900만 달러였으니까 수익 자체는 괜찮았어요. 로튼 토마토 점수도 83~84% 정도로 평가도 나쁘지 않았고요.
근데 문제는 1년 전에 팀 버튼의 배트맨이 4억 달러를 벌었거든요. 그 그림자가 너무 컸어요. 같은 시기에 나온 히어로물 중에서는 가장 독창적인 축에 속하는데, 대중적 인지도는 배트맨이나 나중에 나온 더 마스크, 블레이드 같은 영화들에 비하면 확실히 밀려요.
속편이 두 편 나오긴 했는데 둘 다 극장이 아니라 비디오용이었고, 리암 니슨 대신 아놀드 보슬루가 주연을 맡았어요. 샘 레이미도 빠졌고요. 1편의 매력을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었던 거죠.
프란시스 맥도먼드도 나온다
지금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세 번이나 받은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리암 니슨의 여자친구 줄리 역으로 나와요. 음악은 대니 엘프먼이 맡았는데, 이 사람은 나중에 스파이더맨 음악도 했거든요. 샘 레이미-대니 엘프먼 조합이 여기서 처음 시작된 거예요.
그리고 이블 데드의 브루스 캠벨이 카메오로 잠깐 나와요. 마지막 장면에서 스쳐 지나가는데, 샘 레이미 영화 팬이라면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요.
정리하면
✅ 샘 레이미가 슈퍼히어로 판권을 못 구해서 직접 만든 오리지널 히어로 영화예요. 스파이더맨보다 12년 앞선 작품이에요.
✅ 리암 니슨의 첫 주연 영화로, 화상을 입고 괴물이 된 과학자 역을 맡았어요. 멋진 히어로가 아니라 비극적인 복수자에 가까워요.
✅ 로튼 토마토 83%, 제작비 대비 3배 수익을 올렸지만 같은 시대 배트맨의 그림자에 가려져 좀 묻힌 영화예요.
요즘 마블이나 DC 히어로물에 좀 질린 사람이라면 오히려 다크맨이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. 히어로 영화의 공식이 정해지기 전에, 감독 한 명의 독특한 취향으로 만들어진 히어로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면 한 번 찾아볼 만한 영화예요. 최근에 샘 레이미가 극장용 후속작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는데, 만약 진짜 나온다면 리암 니슨이 다시 참여할지가 궁금해지는 부분이에요.